습한 하루, 비의 잔상이에요

하루 종일 내린 비는 도시의 색을 덮어버렸어요. 회색빛 하늘 아래, 건물들은 윤기를 잃고 눅눅하게 가라앉았어요. 창문에 맺힌 물방울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흘러내렸고, 그 사이로 흐릿하게 비친 세상은 괜히 멍하니 바라보게 만들더라고요.

밖은 온통 축축했어요. 공기는 무겁고, 땅은 물기를 머금은 채 발끝마다 끈적하게 들러붙었어요. 우산을 써도 소용없는 습기는 옷 속까지 스며들었고, 머리카락 끝은 눌어붙었어요. 습기와 함께 따라온 냄새는 젖은 흙과 먼지, 오래된 나무의 향이 뒤섞인 것 같았어요. 어릴 적 장마철이 생각나는, 묘하게 익숙하고 조금은 쓸쓸한 냄새였어요.

사람들의 발걸음은 느려졌고, 말소리도 낮아졌어요. 하루를 덮은 이 눅눅함이 마치 감정에도 스며든 것 같았어요.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면서, 잠시라도 모든 것을 쉬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었어요. 세상이 잠깐 숨을 고르는 듯한, 조용하고 무겁고 촉촉한 하루였어요.

그리고 그렇게, 또 하루가 저물어 갔어요. 비는 아직 멈추지 않았고, 마음에도 작은 방울 하나가 또 떨어졌어요.